2020.11.09.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오심을 기다리는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오늘도 이렇게 생명의 삶을 시청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님들의 삶속에
정말 경견하고도 아름다운 종말의 성도들 또 그리스도의 신부 되어진 그런 거룩한 모습이 우리 안에서 회복되어지고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가기를 원합니다.
주 오심을 기다리는 삶이란, 진정으로 어떤 영적인 생활과 또 영적인 활동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자칫 잘못하면 수많은 이단과 또 사이비가 바로 종말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통해서 나타난 것처럼
오늘의 본문 말씀은 참으로 경건하며 아름다운 마지막 때에 교회와 성도의 모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서 저와 여러분들이 마지막 때에 신부 되어진 주님의 교회
주의 성도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본받아 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평생 성령 안에서,
거룩한 몸과 마음으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서 28절 말씀 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에 오심을 기다리는 종말의 성도의 바람직한 영적 삶으로써
19절부터 20절까지 예언에 대한 또 성령에 대한 그러한 올바른 또 경건한 그런 자세를 5가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먼저 19절에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멸 하다' 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불을 끄다' 라는 그런 의미가 되겠지요.
여기서 성령이 불의 이미지로써 형상화 되었다 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성령이 불길과도 같은 그러한 모습으로 형상화 된 것은 이미 오순절 성령강림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분명 하겠지요.
사도행전 2장 3절에서
사도행전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하고 그렇게 '불' 같은 성령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불' 자체가 '성령'이거나 '성령' 자체가 '불'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분명히 불과 같은 속성으로서 사람의 내면에 있는 죄악의 어두움을 다 불태우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들어 내도록 그렇게 뜨거운 마음을 주신다 라는 것이 바로 '불길 같은 성령' 의 이미지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주 예수그리스도를 부르는 우리 모두는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그러하니 성령의 지금도 계속 되어진 영광을 신뢰하시고 또 그것을 성실하게 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원합니다.
2.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두번째는 20절에서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이란 미래에 어떤 사건을 예지적으로 말해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예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하는 행위'를 이야기한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멸시하다' 라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다' 라고 하는 그런 성서적인 뜻을 갖습니다.
그러니 예언을 멸시한다라는 것은 예언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시한다는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뭐 그런거 뭐 ... 나에겐 중요하지 않아. 그것이 오늘날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고 하는 무의미하게 또는 무관심하게 무시하고 또 그렇게 되돌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죠.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든 예언은 신구약 성경 66권 속에 모든 예언의 내용들이 다 담겨져 있고 완성되어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이 성경을 보완하기 위해서 충족하기 위해서 덧붙일 수 있는 예언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예언은
성경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서 묵상하고, 깨닫고, 해석하여서 설교하거나, 전하거나, 선포하는
일련의 모든 행위를 예언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생명의 삶을 두고 QT하고 있는 우리 모두도 역시 일종의 예언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풍성한 예언적 삶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주어지길 원합니다.
3.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또한 21 절에서 세 번째로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헤아리다' 라고 하는 이 말도,
금,은을 재련하는 용광로에 넣어서 '그 진위를 확인해 보라' 라고 하는 시험하다. 검증하다.라고 하는 뜻을 갖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악한 영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인지를 구별하고, 분별하라'라고 하는
그런 뜻이지요.
그래서 범사에 헤아려서 좋은 것을 취하라고 하는 것은
마치 그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분명한 분별을 갖는다면, '굳건히 붙잡아라', '놓치지 말아라' 라고 하는 그런 명령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으로 부터 확신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4.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악한 것으로 분별 될 수 있겠지요?
어떤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닌, 악한 영으로 부터 온 것이든지, 개인적인 사견이던지
그 모든 것들은 바로 버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모양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것은 단지 어떤 왜곡된 진리나 거짓 예언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악한 것들을 철저하게 져버리라는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예언을 멸시치 마시길 바라며, 모든 것을 잘 분별하기 바라며, 그리고 선한 것을 취하기를 바라고,
마지막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는, 마지막 주에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바울은 앞서 영적 생활에 대한 5가지의 부탁과 명령을 마치고, 중보기도를 이행합니다.
23절의 말씀은 바로 바울의 데살로니가전서를 마치는 마지막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왜 바울은 중보기도로써 마치는 것일까요?
데살로니가전서 3장 9절에서 13절에 말씀도 역시 전반부의 내용을 마치면서 중보 기도로 마쳤습니다.
그것은 모든 명령, 모든 권면이 간절하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그러한 마음으로써의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떤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또 명령을 잘 지켰다고 해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완성의 주체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로써 종료해야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믿게됩니다.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여기서 두 가지를 기도 하고 있지요.
첫째는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라는 것이며
두번째는 '너의 영과 혼과 몸이 흠없이 보전되게 되기를 원하며' 라라고 두가지를 중보기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두가지가 공통된 것이 있는데요.
여기서 '거룩하게 하다' 라는 것과 '흠없이 보존 되다' 라고 하는 것은 잘 떠올리면
구약의 제사 속에서 희생 제물로 드려지는 그 제사의 속성, 거룩하게 되는 것과 흠없이 보존 되어서 아름답게 드려지는 그 속에 있다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러니 지금 바울의 중보기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거룩하게 되어져서 어떤 고상한 상태를 유지하는 그러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흠 없이 보존 되어져서 결국에 무엇입니까? 드려지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라고 말할 수 있겠죠?
향기로운 향축제물이 되신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되신 하나님의 아들은 결국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재물이 되었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데살로니가 전서에 마지막 중보 기도는
바로 그렇게 아름답고 거룩하게 흠없이 보존 되어져서 하나님 앞에 드려지기를 바라는 바울의 간절한 소망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 받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요?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화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을 기다린다 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오늘도 성결하게 거룩해지고 그리고 아름답게 보존되어저서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사람으로 드려지는 것
바로 그것이 주에 오심을 기다리는 종말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 삶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24절의 말씀을 읽어보지요.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이러한 신앙으로 부르시는 분은 바로 미쁘신 하나님 이시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기도한 두가지의 중보기도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성도의 구원은 물론이요.
구원을 완성해 가는 성화적인 삶도 이끌어 가시는 분, 또 완성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개인적인 의지나,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그러한 독자적인 어떠한 행위와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하여서 성도인 우리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시고,
자발적으로 수행하려는 그런 선한 의지를 우리들에게 북돋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하여서 정말 성도들이 거룩하여지고, 금 없이 보존 되어져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제자도의 삶이
오늘날 마지막 시대에 종말의 때
우리에게 아름답게 펼쳐지고 열매 맺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또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을 위해 나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주 오심을 기다리며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예언을 사모하며 모든 것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의 것을 취하며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는
마지막 때에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가 온전히 거룩하여지고 우리의 모든 것이 흠없이 보존 되어져서
주께서 하나님께 그렇게 들여졌듯 우리도 주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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