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8. | 생명의 삶 | 조호영 목사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죄 중의 하나는 교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132번이나 그 교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 여성 AI 여덟이 읽어주는 교만 )
교만하지 말라고 언급하고 있는데요.
교만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마음이겠죠.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처럼 자신을 높이는 마음, 바로 마귀에 사단의 성품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스마야를 보면서 그런 마음이 듭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 했는데, 스마야가 바로 그 교만으로 인하여 멸망으로 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 말씀 예레미야서 29장 24절에서 32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패역한 말에 임하는
엄중한 심판
예레미야 29장 24절에서 32절 말씀입니다.
예레미아서 29장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에게 예레미아가 보낸 소망과 위로의 편지입니다.
그리고 또한 인내로 그곳에서 70년을 머물것이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곳에서 삶을 살아라' 하는 그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던 함께 끌려갔던 선지자들이 예레미아에 대해서 반발을 하죠.
그래서 어제 말씀에 아합과 시드기야 선지자는 그를 반발하고 많은 사람에게 거짓 예언을 해서 죽임을 당했던 그런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또 한명의 선지자가 지금 예레미야의 그 편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납니다. 바로 스마야 선지자 인데요.
한번 26절부터 28절까지 읽어 보겠습니다.
26 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심은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
27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28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
지금 스마야 선지자는 포로 된 그 바벨론 땅에 있는 선지자 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마 이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 하나님은 곧 우리를 회복시킬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아가 오랫동안 그 곳에 집을 짓고 살 것이라는 편지를 보냈을 때, 어제 언급되었던 아합과 시드기야 선지자처럼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머물고 있는 친구 선지자에게 편지를 쓰게 된거죠.
그 이름이 25절에 보면 스바냐 라는 제사장입니다.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너는 왜 그 자리에 앉아서 그런 예레미아 같은 사람을 아직도 남겨놓고 이런 편지를 이곳에 보내게 하느냐?
왜 우리를 다 절망 가운데로 이끌게 하느냐? 하면서 예레미아를 어떻게 표현합니까?
'그는 미친자요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목에 씌우는 나무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고랑을 채우게 하여야 하지 않느냐?'
하면서 지금 그 친구 제사장에게 나무라는 듯 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가 왜 선지자 노릇을 하도록 놔두느냐?
참 이것을 보며 예레미아가 업신여김을 받았구나. 정말로 마음으로 힘들었겠구나.
미친자다. 너는 선지자도 아니다. 그 오랜 20여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전하고 있던 예레미아 입니다.
근데 사실 이것이 예레미야는 요시아(BC 340-609) 왕 때부터 여호아하스(BC609), 여호야김(BC 609-598), 여호야긴(BC 598-597), 시드기야(BC 597-586) 왕까지 4대에 걸쳐서 오랜 세월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했던 그런 선지자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 일어납니까?
BC 586년에 한참 후에 일어난 그것을 계속 선포하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예레미아를 업신여기고,
"눈에 보여 줘라! 왜 이렇게 몇년이 지난 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느냐?"
"바벨론이 우리를 심판 한다?"고 하면서 많은 책망과 비웃음과 조롱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그러기에 이 스마야도 바벨론에 포로 까지 잡혀와 있으면서도 지금 예레미아를 비웃고 있습니다.
'미친자다. 그는 선지자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죠.
영적으로 무딘 예언자 입니다. 업신여기는 교만이 그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아가 하나님의 보낸 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를 업신 여기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에 위치, 권위를 이용해서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에게 뒤로 편지를 보내고 있어요.
예레미야가 그런 내용에 편지를 이곳으로 보냈다.
이것이 어찌 가당키나 하느냐? 왜 그런 자를 가만 놔두느냐? 라고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로 두려운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조건 '제사장이다. 선지자다'해서 우리가 따라갈 것이 아니구나.
정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는 누구인가?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도 세상에 살면서 요즘 많은 분들이 그러더라구요.
우리가 선거를 할 때 또 어떤것을 뽑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뭐 장로다. 권사다. 어떤 직분으로 뽑곤 했는데,
아니다
어떤 위치가 그 사람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인지.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묻고 기도하는 자인지, 그것을 먼저 따라 가야겠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스마야가 그렇습니다.
높은 위치에 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스마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나는 귀를 기울이고 있나요?
영적으로 무지했던 선지자 스마야의 편지를 받은 예루살렘의 제사장 스바냐가 예레미야에게 이 편지를 읽어 줍니다.
이 스바냐는 예레미야를 인정했고 호의를 가진 그런 제사장이 얻습니다. 29절 한 번 볼까요?
29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서 들려 줄 때에
그 편지 내용을 읽어 주었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뒤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주관 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 위에 계신 하나님
지금 권한위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예레미야 입장에서 이것을 읽으면서 드는 마음은, '어땠을까?' 라는 것을 잠시 목상해 봅니다
얼마나 속상하고 억울하고 그리고 자신을 '거짓 선지자다. 미친자다.' 말하는 그 스마야가 밉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억울하고 분한 그 예레미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임합니다.
30절 31절 입니다.
30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1 너는 모든 포로에게 전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를 두고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지금 바벨론에 있는 그 모든 그 유대인 포로들에게 또 이 말을 전해라'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합니다.
예레미야가 다시 또 그들에게 이제 말을 해야 되는건데, 뭐라고 말하고 합니까?
"내가 그 스마야를 보내지 않았다.
그는 내가 말한 것을 예언 하지 않았다.
그는 거짓 예언자다."
그리고 또하나 무엇을 말합니까?
"너희가 그 거짓말을 믿었다."
너희를 믿게 하기 위해서 얘기했는데, 그것을 너희가 믿었다.
지금 들은 사람 듣고 믿은 사람들도 문제인 것이죠.
왜?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그런 죄성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 속에서 무엇을 말씀하시느냐를 듣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을, 내가 원하는 말을 먼저 듣고 싶어하고, 그것이 하나님 말씀이다' 붙잡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의 죄성이요. 우리의 마음입니다.
지금 이 거짓을 믿었다고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 하십니다.
우리 주변에도 거짓 예언자들의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요즘같이 이단이 정말 왕성하게 활동하는 때가 그 어떤 때보다 요즘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은 사람으로부터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우리가 상고해 보아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해아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곳으로 보냈는지,
왜 바벨론에 70년이나 머물러야 하는지,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회복되어야 하는지를 깨달을 때
우리는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그 바벨론으로 부르신 뜻을 깨달을 수가 있다는 것이죠.
결과 어떻게 됩니까? 32절에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지금 스마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레미아 입술을 통해 또 예언하고 있습니다.
70년에 긴 포로 생활이 끝나고, 귀한하게 되는 그 복된 시간에 스마야의 자손들을 없을 것이다.
그 가문은 멸망 되어 있을 것이다. 라고 지금 예언하고 있습니다.
복된 역사에 그 가정은 빠질 것이다.
얼마나 두려움 말입니까? 지금 귀한하지 않고 그들은 멸망할 것이다. 정말로 두려운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 한 가지 말씀이 들어오는 것이 무엇이냐면, 그가 나 여호와께 폐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하나님은 나에게 폐역한 말을 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 사울이 믿는 자들을 핍박할 때에 그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 그 빛 가운데서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했을 때
"나는 내가 핍박한 예수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분명히 사울은 믿는 자들을 핍박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핍박했다'라는 것이죠.
정말 두렵습니다.
함부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한 것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함부로 한 것이다. 말하는 이 말씀이
오늘도 이 시대의 동일하게 우리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주 안에서 깨어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보기 위해 내가 버릴 완악함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고 하셨는데
스마야 선지자의 그 교만한 마음이 우리의 죄성임을 고백합니다
내 안에도 동일하게 이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높아지고 싶은 마음,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나의 의견과 나의 생각을 주장하는 그런 죄성이 내 안에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그것을 내려놓게 하여 주시고
오늘도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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