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0.화 생명의 삶 박종길 목사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릴 때 예수님을 믿었는데요
지금도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을까?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십자가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너무 놀라운 은혜 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그 은혜 가운데 오늘 하루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해마다 드리는 속죄,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다
레위기 16장 1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레위기 16장은 특별히 레위기 전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론이 성소에서 휘장 가운데, 지성소로 들어가는 그런 아주 의미있는 날입니다
온 백성의 죄를 다 속죄하는 그런 대속죄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우리 2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성소의 휘장 안은 지성소를 말하죠
지성소는 법궤가 있습니다. 언약궤라고도 말하죠.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십계명의 돌판이 적힌 그 돌 판, 아론의 그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이렇게 들어 있는
직사각형의 아카시아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안과 밖을 덮인 그런 법궤가 있는 장소입니다
지성소는 아무 때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1년에 단 한 하루, 그리고 한 사람 대제사장만이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는 그런 날이고
그 들어가는 날이 바로 대속죄일 입니다
여기보면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라고 얘기하죠
아마도 아론의 두 아들이 죽었던 것이 이 지성소를 함부로 들어갔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그런 추측을 하게도 하는 그런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다'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속죄소는 어디인가? 또 다른 장소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아니고
이 법궤를 덮고 있는 뚜껑은 아닙니다. 뚜껑은 아니지만 뚜껑과 같은 역할을 하는
두 천사가 서로 마주보는 날개를 펴고 서로 마주보는 형상에 그런 속죄소라고 하는 또 하나의 성막의 기구입니다
그 기구가 법궤를 덮게 되는데요
그 속죄소 위에 나타나게 나겠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그래서 이 속죄소를 옛날 우리 한국의 어르신들은 '시은자' 라는 그런 한문을 썯습니다
施(베풀 시)자에다가, 恩(은혜 은)자에다가, 藉(자리 자) 자를 써가지고 은혜를 베푸는 장소라는 거죠
이 속죄소는 어떻게 보면 우리의 죄가 속함을 받는 그런 장소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속죄소에 대해서 이렇게 좀 더 크게 깨닫게 됐던 계기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히브리서 말씀을 공부할 때였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이러한 제사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가 출애굽할 때에 보면 마지막 장자의 재앙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문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집 안에 있는 장자가 그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가서 그 집 안에 있는 죽어야 되는 장자는 구원을 받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법궤 안에 있는 모세의 돌판은 율법은 우리의 죄를 고발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데
근데 그 법궤를 덮고 있는 이 속죄소의 보혈의 피가 뿌려지고
하나님은 결국 이 속죄소위에 오심으로
마치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대문의 피를 보고 넘어갔던 것처럼
하나님은 속죄소에 뿌려진 피를 보고 그 속죄소 안에 있는 법궤안에 있는 돌판에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것을 보지 않고
그 피를 보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굉장히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죄 하기 위해서
자신의 피로서 진히 대제사장이 되어 주신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피를 흘리죠
그러니까 우리가 십자가를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는 죄인이지만 그러나 주의 보혈이 우리에게 흘러 우리를 덮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덮고 있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 십자가를 보고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는 구원에 대한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속죄소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대제사장이라도
아무 때나 지성소에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언제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과
유익을 어떻게 누리고 있나요?
대속죄일은 너무나 중요한 예이죠
어떻게 보면 온 백성의 죄가 다 속죄받은 그런 날이죠
주님이 십자가에 달린 날이기도 하지요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함과 같은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대제사장인 아론은 먼저 대속죄일 전 6일 동안 그는 자신을 부정한 모든 것으로 부터 구별하여 이 대속죄일을 준비 합니다
그리고 준비하고 7일째 되는 날 대속죄일 날
그는 그가 입었던 화려하고 그리고 멋있는 대제사장의 옷을 벗고 그는 세마포 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4절 말씀 인데요
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어떻게 보면 화려한 대제사장의 그 지혜를 상징하고 보여 주는 그런 옷이 아니라
겸손함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결함에 그러한 그 옷이죠. 세마포 옷을 입고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 십자가에 죽으시고 내려 오셨을 때 세마포로 그 몸을 감싼거와 같은 그러한 겸손함으로, 아무런 장식이나 화려함이 있지 않은
그 세마포 옷으로 그의 속옷과 그의 겉 옷을 입고, 띠를 띠고, 또 세마포 관을 쓰고, 그는 대제사장 아론은 지성소로 나아가게 되어집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속죄 하는 그 중차대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는 그의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어질 때 세마포로 싼 그 세마포 그것이 그분의 전부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속죄일 날 아론은 자신을 위한 속죄를 먼저 한 이후에 그리고 그의 몸을 물로 씻고 대제사장의 화려한 옷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또 속죄양과 같은 그런 세마포 흰 옷으로 갈아입고 그는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되어집니다
부지 가운데 부지중에 지은 모든 죄든, 알고지은 모든 죄든 결국 그 죄를 속죄 하기 위해서 지성소 앞으로 나가는 거죠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고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곳이고 하나님이 죄를 속죄해 주시는 그 곳으로 대제사장은 나가게 되어집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속죄 하기 위해서 친히 자신의 피를 가지시고 자신의 몸과 피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십자가에 유월절 어린 양과 같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죽으셨을때 마태복음에 의하면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그 두꺼운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밑에서 사람이 찢으신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찢어져 둘이 되어서 성소에서 지성소로 나아가는 새로운길
새로운 상길을 열어 놓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는 새로운 상길을 열어놓으신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것이 이 대속죄일의 모습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세마포를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대속죄일 날 대제사장이 속죄소 위에 나타난 하나님 앞에 나갔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해 우리의 죄를 보지 않으시고 용서하여 주시는 복음의 진리 가운데 나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오늘 하루도 지켜 주옵소서
우리의 자녀와 가정과 일터와 기업을 지켜 주시고
병상에 있는 환우들과 선교사님들과 해외의 한인들을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스라엘 회중의 속죄를 위한
두 염소를 제비 뽑아
각각 어떻게 사용했나요?
내 삶에서 멀리 떠나보낼
죄악 된 행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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