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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멈추어 서시는 하나님(에스겔 10:9~22)(20250731)

2025.07.31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사랑하기에 멈추어 서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영정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벌써 7월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고 잘 마무리하며 또 새로운 8월 한 달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기다리는 묵상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스겔서는 구약의 요한 계시록이라고 불릴 만큼 천상의 존재들과 신비한 사건들에 대해서 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한편 이상과 신비의 세계이기 때문에 현실만 바라보고 사는 우리의 눈을 열어 천상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책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하늘의 비밀한 세계로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겔 10장 9절에서 22절 말씀입니다.

 

 

 

사랑하기에 멈추어 서시는 하나님

 

 

 

에스겔 10장 9절에서 22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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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10 그 모양은 넷이 꼭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11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사방으로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나아가되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나아가며
12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13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부르며
14 그룹들에게는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째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15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16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나아가고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땅에서 올라가려 할 때에도 바퀴가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17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영이 바퀴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 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20 그것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래에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인 줄을 내가 아니라
21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22 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그 몸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가더라

 

 

어제 묵상했던 거와 같이 선지자 에스게은 환상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나는 가상한 일들을 보았고,

또 예루살렘 성전과 도시에서 일어나는 죄악을 심판하는 천사들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도 '내가 보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역시 환상 중에 보여주신 계시(啓示)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전에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그룹, 곧 케루빔(Cherubim, 히브리어: כְּרוּבִים‎) 이라는 천상의 존재들을 예루살렘 심판의 현장에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9절, 10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9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10 그 모양은 넷이 꼭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에스겔은 자신이 보았던 그룹 천사들의 모습과 활동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상하는 우리에게는 이 그룹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당시 에스겔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지식, 경험, 언어적인 한계 안에서 관찰하고 해석해서 묘사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룹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말씀에 기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묵상하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룹 천사들 곁에는 각각 황옥같이 빛나는 바퀴가 하나씩 있고 모두 4개의 바퀴가 있었답니다.

4개의 바퀴는 모양이 다 똑같았고 마치 바퀴 안에 또 다른 바퀴가 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이 바퀴들은 그룹이 움직일 때마다 함께 움직였는데, 바퀴가 사방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그룹은 몸을 돌리지 않고도 어느 방향이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섬기는 천사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그룹의 움직임은 곧 세상을 두루 관찰하시는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드러냅니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계시죠?

특히 그 바퀴에는 그 둘레에 눈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이 그룹의 여섯 날개에 눈이 가득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 말씀에는 바퀴에 눈이 가득했다 합니다.

그룹이 가진 이 수많은 눈, 곧 세상을 살피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잘 드러낸다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이 그룹의 내면이 각각 소의 얼굴, 사람의 얼굴, 사자의 얼굴, 독수리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이 내 얼굴은 신약 성경 사 복음서의 특징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장차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의 네 가지 성품을 상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왕의 복음인 마태복음은 사자 복음이라고 부르고 섬기는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주제로 삼은 마가복음은 소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소외되고 약한 자를 돌보시는 주님을 주로 기록한 누가 복음은 인자 곧 사람 복음이라고 부르고 헬라 세계를 위해서 기록된 이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복음서의 저자에 따라 예수님의 각기 다른 성품이 강조되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에스겔 서에서 보아온 내 그룹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16절, 17절에서 에스겔은 그룹 천사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하는데요.

그룹들이 움직일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떠나 함께 움직이고 바퀴는 늘 그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룹이 서면 바퀴도 서고, 그룹이 올라가면 바퀴들도 함께 올라갑니다.

바퀴가 움직이는 만큼 그룹들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물의 영이 바퀴 가운데 있었다고 하였으니, 곧 성령님이 그룹과 바퀴들을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과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과 뜻 아래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복잡하지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냥 드러난 사건들, 기술된 것들만 우리가 그냥 묵상하며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말씀 묵상이 쉬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드러내는 그릇들과 바퀴들은 성령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을 따라 완벽하게 연합하고 함께 주의 뜻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 된 우리도 교회와 성도가 한 몸과 같이 주님의 주권과 섭리에 온전히 순종하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움직이면 우리도 움직이고, 주님이 있으면 우리도 함께 서야 합니다.

그렇게 주와 동행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복되고 형통한 길이 될 것이고, 그것보다 더 안정되고 완전한 길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 에스겔의 모든 현상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그 영광 가운데 그 했던 천상의 존재들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고, 주님과 함께 움직임으로 주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복된 삶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임박한 심판에서 돌이키도록 내가 공동체를 품고 기도할 일은 무엇인가요?
임박한 심판에서 돌이키도록 내가 공동체를 품고 기도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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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슬픈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거룩을 잃었고 더럽혀져서 하나님께서 머무실 처소가 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애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 이 성전을 떠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나 강렬한 모습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에스겔은 슬픔에 잠길 여력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18절, 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 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 그룹들 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마치 왕이 행차할 때 마차에 오르면 그제서야 이동이 시작되는 것처럼 그룹들은 날개를 들었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함께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룹들의 행차는 성전의 정문이 있는 동쪽 문을 향했고, 그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은 지성소 안에 있어야 하는데, 이제 그 폐역(悖逆)한 곳을 떠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마치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정들었던 집을 잠깐 뒤돌아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 문 위에 머물러 있고 충만하게 덮였습니다.

잠시 그곳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22절에서 에스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았던 그룹이 곧 그 발 강가에서 보던 바로 그 내생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22 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그 몸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가더라

 

바벨론 포로로 지내야 했던 에스겔, 그리고 그 백성들은 다 낙심과 좌절 가운데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하나님이 그 영광을 보여주셨는데, 이제는 그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일은 이후에 유대인들의 성전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꿔줍니다.

그들은 그동안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야만 예배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가 이방 땅에 살게 되었고, 그리워하던 성전에 올라가 즐기를 지킬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성전이 이방인 군대에 의해서 더럽혀지고 유린하게 되었고, 자신들은 이방 땅에서 노예로 살게 되었으니, 어떻게 과거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만나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불의와 우상숭배로 심판받은 성전은 다 무너져 내렸으나, 그렇다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자(仁慈) 와 긍휼(矜恤) 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성전에 갈 수 없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이 끌려간 땅 바벨론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발 강가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당신이 친이 그들의 성소가 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은 장차 신약 교회 탄생을 준비하는 사건이 될 수 있도록,

성전이 아니라 이제는 교회를 통해서 새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에 예표(豫表)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이 성령이 그거하는 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안에 주인 행세하려는 옛 사람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그하는 마음의 성전에 불의와 우상 숭배가 자리하지 못하도록 늘 말씀을 묵상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전 동편 문 위에 충만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우리의 삶을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전된 저와 여러분이 거룩과 성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복된 삶, 우리의 삶을 예배자로 만들어가는 복된 일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기에 멈추어 서시는 하나님 마음을 나는 얼마나 깊이 느끼고 있나요?
사랑하기에 멈추어 서시는 하나님 마음을 나는 얼마나 깊이 느끼고 있나요?

 

 

존기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으로
성전된 우리를 덮어주셔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성결하고 복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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