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7. | 생명의 삶 | 서정오 목사
샬롬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죠?
주님의 은혜가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진세골 영성수련원 원장 서정호 목사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센 사람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고 밖으로 나가면 세상에 무서운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아버지가 가장 센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저는 세상이 참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보다 힘센 사람이 많구나."
그렇습니다.
"내 눈에 하나님이 커 보이면 세상이 작아 보이고, 하나님이 작게 보이면 세상이 커 보인다."
그런 고백을 한 분이 있었습니다.
요즘 여러분 눈에는 하나님이 커 보이십니까? 아니면 세상이 커 보이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 열왕기하 6장 10절부터 20절 읽으면서 곰곰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이미지, 나의 생각 한번 돌아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규례를 가볍게 여기는 죄
10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15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17 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그것을 두며 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19 아하스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10절 11절 제가 읽습니다.
10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의 위협에서 벗어난 아하스 왕은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기 시작합니다.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머물고 있던 아수르의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갔던 그 아하수는
앗수르 왕이 섬기던 그 재단을 보고는 그 구조와 양식에 감탄하며, 그 양식을 그려서 제사장 우리야에게 인편으로 보냅니다. 그랬더니 제사장 우리야는 아스왕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전에 급하게 그와 똑같이 재단을 만들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아하스 왕은 그 재단에 나아가 제사를 드립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입니다.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의 긍유하심으로 살아난 유다의 왕이, 앗수르의 이방신의 재단을 흠모하여 그 재단과 똑같이 만들어서는 성전에서 이방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기물들마저 함부로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 놓기도 하고,
함부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었던 양식대로 만들어진 그 성전의 기물들을 함부로 개조해서 고쳐서는 이방신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행위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하고도 어떻게 살아남기를 바라겠습니까? 그 나라가 어찌 안전하기를 바라겠습니까?
결국 아하스 왕 때부터 남 왕국 유다도 그렇게 북왕국 이스라엘과 똑같이 멸망의 길을 걷고 맙니다.
요즘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고 계신지요? 격변하는 세상 물결을 바라보며 두려워만 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아니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얻은 성공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 밖에서 성공하기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실패하는 것이 오히려 인생의 큰 행복이고 축복인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긍휼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올곧은 길, 내 양심에도 부끄럽지 않은 그 길, 한 걸음씩 전진하는 주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5절 16절을 읽습니다.
15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아하스 왕은 이제 살아계신 여호와의 성전에서 대놓고 이방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감히 제사장도 아닌 왕이 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한마디로 아하스 왕에게는 하나님 여호와는 그의 안중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놓고도 어찌 하나님의 긍휼을 바랄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유다 왕국의 미래는 저물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서 우리는 아하스 왕보다 더 사악한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제사장 우리야였습니다.
우리야라는 그 이름은, 여호와가 빛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아주 신앙고백적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제사장이, 이방재단을 만들어 놓고는 그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방신에게 절하는 것을 돕고 있었던 겁니다.
도대체 이 우리야에게서는 성전 제사장의 거룩함도, 엄숙함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웃시야 왕의 성전에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양을 감히 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때 제사장이었던 아사랴는 웃시야 왕을 가로막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웃시야는 비록 나병에 걸려서 평생 갇혀서 지내긴 했지만 목숨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유다 왕국도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우리야 제사장은 왕의 안위도 국가의 평안과 백성들의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개인의 안전과 평안, 그리고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정면으로 대체하며 제사장이면서도 이방신들을 섬기는 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답지 않은 기회주의자, 이기주의자였던 것이죠.
불의를 보고도 나서지 않는 사람,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해 가는 데도 가만히 앉아만 있는 사람들, 우리는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찬송가 460장에서 우리는 찬양합니다.
"뜻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듯이 주 뜻 이루어지이다 외치며 사느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마땅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사십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이 명하시는 사명들을 끝까지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영원히 우리의 의가 되시는 주 예수님,
매 순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악과 싸워서 이기는 거룩한 하늘 백성 되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GNTV > 생명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경고를 거부한 결과(열왕기하 17:13~23)(20240729) (0) | 2024.07.29 |
---|---|
만연해진 죄와 악, 포로로 마친 역사(열왕기하 17:1~12)(20240728) (0) | 2024.07.28 |
위기 상황에서 다른 나라를 의지하는 죄(열왕기하 16:1~9)(20240726) (0) | 2024.07.26 |
하나님의 떠나심과 보호하심의 차이(열왕기하 15:27~38)(20240725) (0) | 2024.07.25 |
계속되는 반란과 악행, 어두운 미래(열왕기하 15:13~26)(20240724) (1) | 2024.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