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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순종'에 실패하면 진정한 승리가 아닙니다(사무엘상 15:1-9)(20230219)

2023.02.19. | 생명의 삶 | 도육환 목사

 

'말씀 순종'에 실패하면 진정한 승리가 아닙니다

 

할렐루야 

영정 온누리교회를 섬기는 도육한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위해 구별하신 날입니다. 

오늘도 예배하는 심령과 처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케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행한 선에 대해 끝까지 기억하시고 상급을 베푸실 뿐만 아니라,

이전의 악행에 대해서도 반드시 보응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바뀌어도 변치 않고 실행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확인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상 15장 1절에서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말씀 순종'에 실패하면 진정한 승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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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4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5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오늘 본문은 늙은 선지자 사무엘이 사울 왕을 찾아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이 사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이미 고별 설교도 했었고, 왕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선언한 이후부터는 왕의 직무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 침묵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사울에게 다시 임무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회복의 기회를 열어두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패자 부활전 같은 특별한 기회이죠.

중간고사는 망쳤지만 기말고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만회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전에 사울의 불순종으로 인해 버림받은 것은 최종 심판이 아니었다는 뜻이 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요나의 입을 통해 40일 후에 니느웨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심판을 선언하셨지만 니느웨 성이 죄를 뒤집어쓰고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회개하자 그 뜻을 돌이켜 주신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에게 고백하신 것처럼 

에스겔 18: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어찌 악인 한 사람인들 망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심판의 불이 쏟아지기 직전까지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과 그 가족을 건져내시는 좋으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사울에게 어떤 명령이 주어졌을까요?

이스라엘 남쪽에 위치한 아말렉을 치고 전멸시키라 하십니다. 

 

왜 아말렉에게 심판을 명령하셨을까요?

그 역사적 배경은 4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홍해를 건너고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

유목과 약탈로 살아가던 호전적인 민족 아말렉에게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야비하게도 출애굽의 이동 대열에 뒤처져 있던 후미의 약자들을 기습 공격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도 사사 시대에 잔인하고 난폭한 침입을 멈추지 않아, 언제나 아말렉은 이스라엘에게는 옆구리에 가시 역할을 했습니다.

마침내 사울이 왕국을 견고하게 세우자, 그를 통해 심판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사울은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계속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투는 그 성격부터 달랐습니다. 

자신의 왕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전쟁을 회램 전쟁이라 부릅니다. 

저주하다 멸절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하람에서 파생된 단어가, 성전을 의미하는 회램이라는 말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다른 전쟁에서 이기면 적들의 전리품을 취할 수 있었지만 회램 전쟁은 그 땅의 백성들을 진멸할 뿐만 아니라
가축들까지 모두 제거했어야만 했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도덕적인 잣대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잔인한 명령을 내리실 수 있는가? 의아스럽기도 하죠.

실제로 지금도 이슬람은 이 회램 전쟁의 전통을 그대로 따라 그들의 종교 전쟁을 지하들 곧 성전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목적을 가진 전쟁은 구약에도 몇 차례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회램 전쟁은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는 목적을 가졌기에 철저히 성결해야 했고, 어떤 죄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40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혹 지금 세상에 악이 여전히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힘들어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실행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유보하시는 것은 악의 가라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의 알곡이 다칠까 염려하여 추수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때로 억울한 일을 겪고 분한 마음으로 밤을 새운 적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밝히시는 날에 우리의 원통함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인내하십시다.

 

동시에 그 심판 중에도 선을 보호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 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사울이 아말렉을 심판하기 전에 인근 지역에 살고 있던 겐 사람들을 먼저 도피시킵니다.

갠 사람들은 출국 당시 미대안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었고 모세가 애굽에서 도피하여 미디안에서 머문 40년 동안 선대해준 사람이었습니다.

알고 있는 대로 모세의 장인이었던 이드로 역시 겐 사람이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머물렀을 때 길을 안내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일을 도와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말렉 지역에 섞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심판의 전쟁 회램 전에 그들을 먼저 빼내었던 것입니다. 

 

지금 좋은 일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선한 일을 다 기억하십니다.

마태복음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의인은 그 후손 천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지요.

400년 전에 아말렉의 악행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400년 전 겐 사람의 선행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의 숨은 섬김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기억하시고 계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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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은 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전쟁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하셨고 승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여전히 불순종의 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사울의 문제는 순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백성들을 진멸했지만 왕은 살려두었습니다.

별로 가치 없는 양과 소들은 말씀대로 처리했지만 상품성이 좋은 가축은 처치하지 않고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죄의 특성이 그렇습니다. 

언제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완전히 악하기만 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흉악범의 악행도 개인적으로 보면 나름의 사연과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죄는 자주 애매모호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죄의 실체를 깨닫고 곧바로 대처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렇게 보면 죄인 것 같고 한편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괜찮은 것 같은 모호한 곳에 죄가 똬리를 듭니다. 

사울이 따로 빼놓은 가축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구별해 놓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유가 얼마나 그럴 듯합니까?

어떤 면에서 사후의 판단은 합리적이고 가성비가 높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은 내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의로우신 심판주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라고 정하신 것이 죄입니다.

보통 이 정도는 다 하고 있고 아무리 상식적이라고 해도 주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시는 것은 모두 죄입니다. 

 

사울은 스스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판단을 따르다가 마지막 기말고사에도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판단이나 기준이 아니라 늘 우리 속사람을 살피시고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되게 해야 합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우리의 가장 고상한 기준이 되게 합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이라면 우리에게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좀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병들어도 괜찮습니다. 

못 살아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복을 누리고 있다면, 건강하다면, 또한 이보다 더 큰 감사는 없겠죠.

그래서 늘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행복입니다. 기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애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사람 눈치를 보고 내린 결정은 어떤 결과를 야기할까요?

 

존귀하신 하나님 
오늘 저희가 드리는 예배와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하시고 
일평생 주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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