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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길에서 만나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창세기 22:1~14)(20220911)

2022.09.11. | 생명의 삶 | 박종길 목사

 

순종의 길에서 만나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안녕하세요. 

거룩한 주일입니다. 

예배드리는 모든 곳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게 될 때, 

참 여러 가지 많은 것을 겪게 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참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시험 가운데도 빠지게 되는데,

늘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고 또 축복해 줄 것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길 원하는데요. 

창세기 22장 1절에서 14절의 말씀입니다. 

 

 

순종의 길에서 만나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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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본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특별히 인생의 큰 어려운 그런 시간이죠. 

전체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두 번의 중요한 믿음의 선택이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너의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떠나라 하는 그러한 믿음의 결단의 시간이고요.

그리고 아마도 오늘 본문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백세에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그런 참 이해하기 어려운 굉장히 힘든 그런 하나님의 명령이죠. 

우리 본문 말씀 2절인데요.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번제로 드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제 하신 말씀이죠.

'아브라함아' 이렇게 부르시고 그런데 이제 그 말씀의 내용이 너무 힘든 거죠.

왜냐하면

독자 이삭 100세에 얻은 아들을 그것도 번제로 번제라는 게 이제 다 태워서 드리는 제사잖아요?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너의 아들을 독생자 이삭을 내게 제물로 바쳐라라는 건데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받으시는 분도 아니시고,

또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서

'내가 너를 축복해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내 자손을 복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삭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면 그 하나님의 약속도 맞지 않는 일이고,

또 인간적으로도 백세에 얻은 자식을 어떻게 번제로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거는 참 인간적으로도 너무 어렵고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과도 같지 않고 이해하는 하나님과도 다른 모습이고

또 하나님 약속이 있는데 그 약속과 지켜지지 않는 그런 참 어려운 시험이고 또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오늘 본문을 우리가 보게 되면 아브라함은 순종하게 되죠.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의 하나님이 지명하신 산에 올라갈 때 여기 5절에 보게 되면 종들에게 그런 말도 합니다. 

'여기서 기다려라. 우리가 다시 돌아오겠다'라고 얘기하죠. 

'우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이 온다는 거죠.

이미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릴 마음이 결정이 됐는데도,

종들에게는 '우리'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아마도 아브라함은 내가 이삭을 번제물로 드려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릴 거라고 하는 그런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떻게 보면은 포기해야 되잖아요? 내려놓아야 되잖아요?

자기의 생각과 경험 이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 그런 모습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종종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지만,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포기해야 되고 내려놓아야 되고 또 순종해야 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이나 내 경험으로는 안 될 것 같고,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를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믿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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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해할 수 없는 그 말씀에 그는 순종합니다. 믿음으로 반응하죠. 그가 가진 가장 큰 보물이죠. 

가장 큰 소유고 기쁨이고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땅으로 가서 그 산에 장작을 지어서 불을 가지고 올라갑니다. 

이삭이 '아버지 여기 제물이 어디 있습니까? 나무도 있고 불도 있는데...' 그랬을 때 아브라함이 말하죠.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재단을 드릴 수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은 칼을 가지고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고 합니다. 

그때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렇게 부르시고 '내가 너의 믿음을 확인했다'라고 하며
수풀의 권리인 숯 양을 보여주시고, 아브라함은 그 양을 제물로 바치죠.

그리고 1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아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예배해 놓은 수양을 번제로 드리고 

아브라함이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래 '이래'라는 말이 이제 준비하다는 그런 뜻인데요.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라는 그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죠. 

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되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시험이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도 과연 아브라함처럼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뭐 저는 자신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가 다 그럴 것 같은데, 몇 가지 좀 나누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처음. 아브라함에게 이제 너의 이삭을 바쳐라 번제로 바치라 했을 때는 

1절에 보면 아브라함 이름을 한 번만 부르세요. 

이제 '아브라함아' 이렇게 부르거든요.

그런데 이제 오늘 본문에 보면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렇게 이제 두 번을 급하게 부르는 걸 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시는지를 다 지켜보는 거죠.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 번 급하게 부르는 걸 보면,

아브라함이 뭐 흉내만 낸 게 아니라 진짜 그의 아들 이삭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불렀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말로만 하는 거가 아니고 또 생각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의 행동으로 증명되고 우리의 행동으로 선택하는 거죠. 

아브라함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믿음의 선택을 하고 행동을 했을 때, 하나님이 막으시죠.

그런데 놀랍게 하나님은 수풀에 걸려 있는 숫 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럼 언제 이 수양이 있었을까?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브라함이 오기 전부터 준비하셨을까?

뭐 여러 가지 생각이 있겠죠.

아니면 이 순간 후에 이렇게 딱 나타났을까?

성경은 얘기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삶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미리 예비해주시는 분이시죠.

우리가 믿음의 선택을 하고 믿음의 결정을 하고 믿음의 행동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풀에 걸린 양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러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나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 나를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내가 기꺼이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거룩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게 하여 주시고,
아브라함의 순종과 결단과 행동이 우리의 순종과 결단과 행동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자녀를 축복하여 주시고, 예배드리는 모든 교회들마다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해외에 있는 한인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선교지의 선교사님들과도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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