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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엘세바 우물 매매, 약속 성취의 작은 징표 (창세기 21:22~34)(20220910)

2022.09.10.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브엘세바 우물 매매, 약속 성취의 작은 징표

 

안녕하세요.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향 목사입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고 계신가요?

모처럼에 보고 싶은 가족들과의 즐거운 만남의 시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나 가족들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가나안까지 오게 되지만,

그의 삶은 언제나 발 붙일 곳이 없는 떠돌이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그의 생전에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가나안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이방의 왕과 언약을 맺게 되는데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창세기 21장 22에서 34절입니다. 

 

 

브엘세바 우물 매매, 약속 성취의 작은 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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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당시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지역의 왕 아비멜렉이 그의 군대 장관과 더불어 아브라함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방문한 까닭은 아브라함과 상호 동맹을 맺기 위함이었죠. 

점점 강성해지고 있는 아브라함을 바라보면서 그의 마음 안에 두려움이 생긴 탓이었습니다. 

아직 인구도 부족하고 국가 조직도 미비한 당시 상황에선 약자에 대한 강자들의 약탈이 빈번하였기에 강력한 이웃과 조약을 맺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중대사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방문한 주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죠. 22절을 보십시오.

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믿는 자든 믿지 아니하는 자든 매한가지로 불안전하고 미숙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아니냐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영접하는 순간부터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주인이 되어 주셔서 우리 삶을 이끌어주시며,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아베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동맹을 맺고자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지략이나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죠. 

이처럼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 하는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신은 어떻게 기쁨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겁니까?'라고 물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는 자들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하는 삶이 늘 평탄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였노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그러므로 형통이란 모든 것이 다 평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죠. 

아브라함도 요셉도 그 인생 가운데 수많은 굴곡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능히 이겨낼 수 있었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자 이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것을 보십시오. 23절 후반부입니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내가 내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내가 더불어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지금 아브라함이 서 있는 곳은 이방인의 땅이었고 아브라함은 그 땅의 나그네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방의 왕이 아브라함에게 간청을 하고 있는 것이죠.

 

요한복음 15장에서는 

요한복음 15:1~5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은 나는 포도 나무며 너희는 가지라 

또 나는 참 포도나무며 내 아버지는 농부라 하시면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는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고 있으십니다. 

 

어느새 9월이 되었지만 지난 8월에는 포도가 한창인 계절이었죠.

잠시 바닷바람을 맞고 싶어서 인천 근처에 있는 대부도에 갔었는데 가는 곳마다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모습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군침이 막고 돌았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그 떼아볕 아래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수고하시는 농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수고가 얼마나 크신지를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아니하시고,

우리들의 삶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수고하시는 농부이십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함께 하심을 믿으며,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꽉 붙어 있는 가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는 풍성한 열매들이 맺히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아브라함이 모든 민족의 복의 통로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이웃과 열망을 축복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어떻게 드러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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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함께 언약을 맺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빼앗긴 우물에 대해서 항의하자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그런데 이는 바야흐로 나그네였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는 증거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일부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뜻이기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그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겠죠.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는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란 처음부터 분명하지 않아서 때로는 뜬구름 잡는 것 같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기에 순종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께서 그 약속대로 이루시는 것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1,885년 부활절 날 조선의 첫 발을 내딛었던 언더우드 선교사님을 잘 아시죠?

아마 그분이 쓰신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라는 시를 읽어보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주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는 이 땅 …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

 

그러나 그 시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칩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고,

아브라함이 어디를 가야 할지 알지 못하였으나, 믿음으로 나아간 것처럼 우리에게도 믿음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자 이제 아브라함은 당시 중동의 관습대로 양과 소를 취하여 언약을 맺으면서 새끼 암양 일곱 마리를 그 언약의 대가로 지불하는데요. 

이는 아브라함이 합법적으로 가나안 땅에서 땅을 얻었다는 증거였고, 그 장소가 바로 부엘세바였습니다.

 

부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이죠.

다시는 서로의 땅을 넘보지 않겠다는 상호 불가침 조약이었으니,

이로 인해서 부에세바는 공식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속한 땅이 됩니다.

 

그리고 33절에서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라고 기록합니다. 에셀 나무란 푸른 숲을 뜻하는데요.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자신을 위협하는 적들과 맞서 싸워야 했던 아브라함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죠. 

이 평화의 약속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거룩한 땅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고,

이 세상의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모든 막힌 담을 허물기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할 때,

다툼과 분열과 분쟁이 가득한 땅 가운데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 하늘에 샬롬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행여 여러분의 삶과 관객 가운데 막힌 담이 있습니까?

마땅히 사랑해야 하고, 하나가 되어야 할 가족이나 이웃이나 친구들 가운데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그리고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십시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이고,

우리 모두를 주님의 평안을 전하는 평화의 메신저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브엘세바 땅을 산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끝까지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하셨사오니,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임을 믿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작은 증거 하나라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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