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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구원 과정에서 자비를 더하신 주님 (창세기 19:12~22)(20220904)

2022.09.04. | 생명의 삶 | 권오향 목사

 

롯의 구원 과정에서 자비를 더하신 주님

 

 

할렐루야 

온누리 교회를 섬기는 권오양 목사입니다.

은혜로운 주일이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인해서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가 예배할 수 있기에 

감사하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길 원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가운데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하심 때문이죠. 

우리의 행위나 자격으로 라면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우리에게 주신 오늘의 말씀 창세기 19장 12에서 22절 함께 묵상하시겠습니다. 

 

 

롯의 구원 과정에서 자비를 더하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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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18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19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20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21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어제 이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야기입니다. 

두 천사는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는 가운데서 롯에게 다가가

속히 네게 속한 자들, 네 모든 사위 자녀 성중에 있는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강건합니다.

이는 롯 뿐만 아니라 롯에 속한 모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죠. 

우리는 천사들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단위가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도 베드로가 빌립보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라고 권면하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가족을 따라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아니죠. 

부모의 신앙을 본받아서 자녀가 예수님을 믿을 때

또는 자녀의 믿음을 보고 믿지 않는 부모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 

온 가정에 구원의 은혜가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한 사람의 믿음이 너무나 중요하죠.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한 사람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을 때

그 한 사람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롯에 사위들은 '서둘러 이 성을 떠나지 아니하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롯의 말을 아주 우습게 여깁니다.

아무리 구원의 복된 소식을 들려주어도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법이죠.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누차 말씀을 하시는데요.

그만큼 듣는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을 늘 상기하면서 우리의 영혼의 길을 하나님께 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있지만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 될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잘 들을 때 

구원의 복이 임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죠.

 

천사는 할 수 없이 롯의 아내와 두 딸만을 데리고 떠날 것을 요구하는데요.

그러나 롯의 모습을 보십시오. 16절입니다.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롯 또한 천사의 말을 순순히 따르지 않습니다.

그냥 떠나려니까 소돔에 남겨둔 커다란 집과 이제 막 새로 구입한 자동차, 자신이 아끼고 아끼는 골프채 등등이 생각났는지도 모르죠.

다 버리고 떠나자니 너무나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주저주저하는 것입니다. 

롯이야 말로 한 발은 하나님께 두고 또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두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연적인 그리스도인의 대표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너무나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는 이러한 자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주일에 교회 안 오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해서 예배 드리기는 하는데 

나머지 날은 새카맣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제 마음대로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시죠.

 

16절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신 이었더라'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은혜이지 우리의 어떤 행위나 자격이나 자질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값없는 선물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하나님의 구원을 값싼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공기나 바람이나 햇살 이런 것들이 값을 주고 살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하고 귀한 것인 것처럼

구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값진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이 최고의 선물을 받은 우리들은 선물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누릴 뿐만 아니라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예배 후에 반드시 찾아가셔서 그 받은 선물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예배가 될 것입니다.

 

천사가 재촉함에도 불구하고 롯과 그의 식솔들이 지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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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롯은 성 밖을 향하여 지체하지 말고 도망하여야 했습니다.

만약 머뭇거렸다가는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천사들은 롯을 밖으로 이끌어 내며 망설이지 말고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고 재촉합니다.

절대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멸망이란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러나 롯은 너무나 두려워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서 도망갈 힘조차 잃어버린 것이죠. 

이처럼 두려움은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선 두려움을 주는 영이라고도 할 수 있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두려는 사단의 속셈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19절과 20절을 보실까요?

19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20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산으로 도망하라는 천사의 말을 들은 롯이였지만, 그는 그 명령 앞에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한 자였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을 향해 그의 작은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었죠. 

이때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속히 피하라고 촉구하시는데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불연듯 1991년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났던 911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정말이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참사였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메인 시티 뉴욕에서 테러가 일어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저마다 한 목소리로 'How There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감히'라고 외쳤지만,

바로 그때 타임 스퀘어 출시 담임 목사님이셨던 데이비드 위 클러스 목사님은 맨해튼 한복판에서 러너웨이라는 주제로 여러 차례 말씀을 전하시면서, 미국인들을 향해서 '주께 도망하라 주께 피하라'라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미국인들의 자만심을 깨뜨리는 메시지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서인지 많은 미국인들이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리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피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두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품이죠.

아무리 많은 부와 힘과 권력을 가졌다 해도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나 재난 앞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지켜줄 자는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죠.

시편 46편 1절에서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롯은 비록 미온적인 그리스도인이었지만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롯을 향해 '의로운 롯'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롯의 행실이 의로워서가 아니었죠. 

비록 연약한 믿음이었지만 하나님만이 자신의 생명을 구원하실 유일한 분임을 믿었기에 이로운 롯이라는 칭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심도 우리의 행실 때문이 아니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의롭게 여김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약한 믿음이 견고해지고, 점점 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자로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도 자비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겨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맛보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거듭된 요청이나 우유부단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자비를 더하신 일은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한량 없는 하나님의 자비로 우리를 품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있지만,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넉넉히 이길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사오니,
우리의 연약함이나 죄악 된 행위에 묶이지 않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가 회개함으로 
구원의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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