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2. | 생명의 삶 | 임병선 목사
안녕하세요.
용인 제일교회를 섬기고 있는 임병선 목사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영원히 붙들어야 할 복음과 전통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우리가 정말 놓치지 않아야 할 복음의 본질은 놓쳐버리고
바뀌어도 되고 달라져도 되는 전통을 마치 복음의 본질인양 착각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헛된 논쟁과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전통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복음의 본질보다 우선할 수 없고, 그것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줄 수도 있음을 우리는 인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교회 안의 헛된 논쟁과 다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고린도후서 3장 12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참된 자유를 누리며 영광에 이르는 성도
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성당에서는 여성분들이 예배 그분들 말로는 미사를 드리잖아요.
그때 머리부터 내려오는 수건 같은 것을 쓰고 예배를 드립니다.
왜 그럴까요? 그 유례가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십계명이 드는 율법을 받아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모세의 얼굴에 엄청난 광채가 납니다.
모세는 그 광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이 부셔 자신을 보지 못할 것 같아, 자신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내려오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광채는 오래가지 못하죠.
결국에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사라졌기 때문에 얼굴에 쓰인 그 수건도 다 벗겨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 안에 수건 논쟁을 설명하며 모세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그 영광은 일시적인 것이고 영원한 것이 아니며 결국 사라지고 말았고 그래서 결국에는 모세 또한 이제 그 영광을 가릴 수건도 필요 없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근데 문제는 교회 안에 있는 유대주의자들은 아직도 그 수건을 쓰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치 자신들에게 아직도 그 영광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형식적인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교회에서 왕년 이야기를 많이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왕년에 내가 은혜 많이 받았는데,
왕년에 내가 교회에서 봉사 많이 했는데,
우리 교회가 왕년에는 엄청 부흥하고 성도도 많았는데'
교회나 신앙생활하는 우리에게 왕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이 더 중요합니다.
왕년에 은혜받은 것 가지고 지금까지 우리는 생활해서는 안 되고 우리는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가져가야 할 신앙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모세의 광채는 이미 사라진 영광이고 그 광채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오히려 영원히 우리 가운데 사라지지 않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영광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부여잡고 날마다 새롭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영광 가운데 구하는 우리들은 더 이상 모세의 영광을 추억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수건을 얼굴에 두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마치 절대적인 것이냐 그것을 안 하면 무슨 큰일이 일어나느냐, 야단법석을 떠는 자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전통 형식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으로 마치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없고를 논하고 그것을 과하게 주장하면 안 된다고 사도 바울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의 삶 가족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임해 있습니까?
그 십자가의 은혜가 날마다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끌고 있습니까?
우리가 수건을 쓰고 안 쓰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인해 날마다 하나님 영광 가운데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의 겉치레, 형식 때로는 그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본질을 놓쳐버린 껍데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늘 신앙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겉 포장은 화려하고 대단한데, 정작 포장을 뜯어보면 별 볼 일 없는 게 들어 있는 상황
우리 신앙이 그런 것이 돼서는 안 됩니다.
겉은 마치 경건한 척 하나님의 영광을 가진 척 근엄한 척 겉은 그렇게 포장하면서,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라지지 않을 영광을 소유하지 못하는 신앙인들이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내실이 꽉 찬 신앙인이 되어야지 형식만 번드르르한 신앙인이 결코 돼서는 안 됩니다.
겉은 집사요 권사요 장로요 목사인데 실상은 그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지 못하는 신앙인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어쩌면 집사, 권사, 장로, 목사 타이틀이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담보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형식만 있는 신앙인이 아니라 진짜 신앙인이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경험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 가운데 가득 차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그건 또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배가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살리는 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그 십자가 은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그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에 참된 의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 17절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 뭐가 있다고요?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주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때 우리 삶에는 참된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시지 우리를 억지로 끌고 다니면서 우리에게 부담을 주거나 힘들게 하는 분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와 신앙생활은 바로 자유함에서 누리는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를 위해 시간을 들이고 헌신하는 그 모든 것이 자유함에서 나오는 기쁨이지 부담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신앙은 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그 속에서 참된 자유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전통과 형식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형식과 전통이 우리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마음을 맞고 있다면 우리는 단호히 그것을 거부할 용기가 또한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생명의 삶 가족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우리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높이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나아갈 때 우리 안에는 세상 어느 것도 줄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기쁨 자유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 가운데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저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따라 하나님 영광 안에 거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함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삶의 참된 평화 기쁨 자유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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