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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간 적대감이 투영된 유다인 진멸 조서 (에스더 3:1~15)(20220615)

2022.06.15. | 생명의 삶 | 이기훈 목사                           

 

민족 간 적대감이 투영된 유다인 진멸 조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기훈 목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면서 살도록 우리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정 중에서 가장 미숙하게 다루는 것이 바로 분노의 감정입니다. 

분노의 감정이 잘못 조절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묵상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에스더 3장 1절로 15절을 묵상하겠습니다.

민족 간 적대감이 투영된 유다인 진멸 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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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3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6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8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10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12 첫째 달 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령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지방의 관리와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14 이 명령을 각 지방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15 역졸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

 

아하수에로 왕하만을 이인자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모든 대신이 하만에게 꿇어 절을 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꿇지도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분노한 하만은 유다 민족 전체를 전멸시킬 계략을 꾸며서 진행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러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하만에게 꿇지도 절하지도 않았을까요? 4절 말씀입니다. 

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모르드개하만에게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은 것은 단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유대인들은 사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우상숭배로 인식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르드개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결코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상황에서 우리는 오늘 주시는 첫 번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반드시 복을 받거나 형통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에 오히려 고난을 더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가정이나 직장에서 성경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저항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을 고수하기 때문에, 부정부패에 가담하지 않기 때문에, 또 세상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받는 일종의 핍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들처럼 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로부터 소외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모르드개가 그런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변할 수 있습니다.

타협은 세상을 더 죄악으로 채울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들 자신이 말씀대로의 신앙을 고수해야 내가 속해 있는 그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 적용 질문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당신은 신앙인으로서 세상과 타협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아니면 말씀대로의 신앙을 고수하다가 핍박을 당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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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은 왜 모르드개 한 사람 때문에 유다 전 민족을 죽이려는 계략을 진행했을까요?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하만은 자신에 대한 모르드개의 태도에 대하여 분노가 가득했던 것이죠.

그래서 모르드개 뿐 아니라 유다 민족 전체를 진멸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7절을 보시면

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에스더가 왕비가 된 지 5년째 되는 해의 연초에 제비를 뽑아서 유다 민족을 몰살할, 거사를 치를 날짜를 결정했던 것입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을 얻은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가 불임절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3대 절기 중에 하나이죠. 

그 용어가 바로 이 7절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하만의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영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분노는 모든 살인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분노가 음모를 낳고, 음모가 계략을 꾸미게 되고, 그 계략이 결국은 살인으로 인도한다는 것이죠.

 

8절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8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어떻게 하만이 음모를 꾸몄습니까?

유다 민족이 왕의 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법을 따라 살기 때문에 제거를 해야 한다고 왕을 설득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9절에서 이렇게 그가 계속 왕에게 말을 합니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유다 민족을 몰살하도록 허락을 해 주시면 은일만단 달란트를 국고로 드리겠다고 왕에게 아첨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이렇게 음모가 진행이 됩니다. 

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모든 유대인들을 진멸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탈취하라는 공문을 보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은 일만 단란트를 모아 왕의 마음에 들도록 헌납을 하려고 했던 것이죠.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분노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분노의 감정이 잘 조절되지 못하면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 22절에서 살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시면서 형제에게 분노하는 사람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오늘 두 번째 말씀에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적용 질문을 여러분에게 합니다. 

당신은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고 있습니까?

분노의 감정에 이끌려 죄짓는 단계까지 내려가는가?

아니면 그 감정을 죄가 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는가?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 간의 갈들을 확대시켜 많은 사람에게 악으로 갚는 일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하나님 아버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며 또 많은 실수를 하는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분노의 감정이 죄까지 이르지 않도록 
저희들의 신앙과 성품을 더욱 성숙시켜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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