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0. | 생명의 삶 | 이기훈 목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기훈 목사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잘 가르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혹시 무엇인지 아실까요?
십계명 중에 부연 설명이 가장 길게 되어있는 계명 그게 어떤 건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안식(安息)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안식일을 이해하고 지켜야 하는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14장 1절부터 14절을 묵상하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예배자, 낮은 자리를 택하는 제자
누가복음 14장 1절에서 14절 말씀입니다.
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시면서 종교 지도자들과 종종 안식일 때문에 논쟁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 내용이 등장을 합니다.
식탁 교제를 나누시는 자리에서 신장병의 일종인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예수님이 고쳐 주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안식일이었지요.
그때 예수님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자들의 내면을 아시고, 이렇게 질문을 하셨어요.
2절 말씀에 보면
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 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게 옳으냐? 옳지 않느냐? 그런 질문을 하신 것이죠.
그러면서 그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질문을 하십니다.
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안식일에 아들이나 소가 물에 빠졌을 때 건져 주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냐?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안식일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알고 있던 안식일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안식일은 3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하나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봉사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쉼을 누리는 것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배하는 것 그리고 쉬는 것으로만 안식을 이해했지 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이해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일에 대하여 계속해서 그들은 지적하며 판단을 했던 것이죠.
이 안식일은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키지만, 안식일은 여전히 안식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또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는 봉사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서 참된 쉼을 누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함께 균형을 갖추어 어우러질 때 우리는 참된 안식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제가 서두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이 안식하는 것에 대하여 교회가 잘 가르치지 않고 있죠.
안식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떻게 쉼을 누리고 있나요?
참된 안식이 여러분의 삶의 여정에 혹시 있는지요.
예배하는 것, 봉사하는 것은 정상적인 크리스천들이라면 다 행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 하나의 소중한 계명으로 우리에게 주신 안식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안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일주일 중에 하루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죠.
우리가 안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한다는 것이고,
또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리듬에 맞추어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참된 안식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돈 벌고 애쓰며 수고하면서 나중에 가서 후회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는 쉼이 없었다는 것이죠.
일주일 중에 하루, 아니면 반나절 뭔가 여러분이 참된 쉼을 얻을 수 있는 안식 프로그램을 오늘부터 시작하실 수 있기를 제가 권면드립니다.
나에게는 참된 쉼 곧 안식이 있는가?
예수님은 사람들의 심리를 잘 꿰뚫어 보는 영안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함께 하는 자들이 그 내면의 높은 자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보셨던 것이죠.
물론 이 높은 자리,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기도 하고 또 그 본능은 죄로부터 기인한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재미난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가면 절대로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라.
나중에 너보다 더 높은 자가 오면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하는 수모를 겪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처음부터 아예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이 좋다.
이것은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유대 사회의 문화이기도 하죠.
소위 VIP 되는 분들이 않는 좌석이 따로 있고, 또 일반 분들이 앉는 좌석이 준비되어 있는 이런 구조가 그 당시 문화였던 것이죠.
그게 익숙하게 알고 있는 문화를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지혜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뭔가 높아지고 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가르쳐 준 것입니다.
정말로 네가 높아지고 싶다면 먼저 낮아져야 한다.
만약 네가 낮아지면 그 후에 높임을 받는 영광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 사람은 항상 어디에선가 자기가 주연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기가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뭔가 자기중심으로 움직여 나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교만이라고 정의하기도 하죠.
이 교만은 역시 욕심에서 온 것이고, 이 욕심은 죄가 가져다준 특성이었던 것입니다.
정말 저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높아지려다가 몰락한 사람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높은 자리의 욕심 때문에 그 자리를 연연하다가 자기의 모든 것 허물들이 드러나 부끄러움을 당했던 사람들도 우리가 많이 보았죠.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한 이와 같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정말로 네가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도리어 낮아져라.'
성경은 이러한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패망과 넘어짐 다 같은 뜻이죠?
이 진리가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경험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베드로전서 5장 5절 내에서
베드로전서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높아지고 자 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 일 수는 있지만,
결코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격은 아니라고 하는 거죠.
예수께서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우리가 낮아질 때 스스로 겸손할 때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제가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여러분 스스로가 주인이 되고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시며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누구든지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다.
여러분 이런 문제 때문에 어느 곳에서나 부끄러움을 경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낮은 자리를 취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경험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된 안식이 무엇인지 모른 체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참된 쉼을 얻을 수 있는 지혜와 결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높아지고자 하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낮아짐으로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영광을 경험하며 인생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를 주님과 동행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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