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9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안녕하세요.
성민교회를 섬기는 이해영 목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2 차 전도 여행을 마치는 길목에서 갱그레아 라고 하는 항구 도시에서 머리를 깎게 됩니다.
바울이 이방 땅에서 머리를 깎은 이유는 서원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스스로 어떤 서원을 하고, 그 서원을 지키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를 깎았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그의 전 존재가 하나님께 들려진 시간과 여정을 마무리하며 헌신의 흔적을 들이는 깊은 영적 행위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실인의 헌신도 그와 같습니다.
서원을 마치는 자리에서 드리는 예물, 그리고 머리를 깎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는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 시간의 결실이자 헌신의 흔적을 하나님께 봉원하는 그런 예식이었습니다.
헌신하는 자의 삶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신은 그 위에 하나님이 친히 축복을 선언하십니다.
오늘 그 축복의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늘 말씀은 민수기 6장 13절에서 27절의 말씀입니다.
헌신하는 백성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
민수기 6장 13절에서 27절 말씀입니다.
13 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 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14 그는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속죄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15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 16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17 화목제물로 숫양에 무교병 한 광주리를 아울러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18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19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의 머리 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20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받들어올린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21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의 몸을 구별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헌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가 서원한 대로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
민수기 6장은 나실인의 서원을 마치는 날 그동안의 헌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서원을 마친 나실인은 성막으로 가서 번제와 속죄제와 화목재를 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길러온 머리카락을 재단에서 불사릅니다.
14절을 보시지요.
14 그는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속죄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여기서 번제에 사용된 단어 올라는 완전히 불태우다라는 뜻으로 헌신의 완전함을 드리는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속죄제는 지난 시간의 연약함과 허물을 하나님 앞에서 정리하는 예물이요,
화목제는 하나님과 다시 깊이 교제하는 축제적 제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3가지 제사, 번제와 속죄제와 화목제는 헌신의 완결을 상징하여서 나실인의 삶이 단순한 자기 수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완성되는 여정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8절도 보겠습니다.
18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특히 나시린이 머리를 깎아 그것을 화목 제물 아래에 불태우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나실인의 머리카락은 그의 헌신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흔적입니다.
히브리어 나지르라고 하는 이 말은 구별된 자라는 뜻인데,
그 구별된 시간이 머리카락이라는 실체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머리카락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시간과 존재와 헌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의미가 됩니다.
이 장면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재단에 올려드린 장면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이 흐름은 이어집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라라고 선언합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헌신은 나의 삶과 시간을 재물로 들이는 행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드릴수록 가장 풍성하게 받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헌신을 완성하는 순간 하나님은 헌신한 자의 손을 축복으로 채우십니다.
드림의 끝이 축복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22절부터는 헌신하는 백성 위에 하나님이 친히 주시는 축복의 말씀, 아론의 축복이 이어집니다.
헌신한 개인만이 아니라 온 공동체 위에 선포되는 이 축복은 헌신이 나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살리고 지키는 거룩한 통로임을 보여줍니다. 24절을 보시죠.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이 선언은 하나님이 보호자이자 공급자 되심을 약속하는 언약적 축복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복에 해당하는 바라크는 단순히 선물이 아니라 관계적인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영적인, 육적인 모든 영역의 충만함이 바로 하나님의 복인 것입니다.
26절도 봅니다.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라고 하는 이 표현은 고대 근동 문화에서 왕이 백성을 향해 얼굴을 밝게 비추는 장면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비추신다라는 것은 가장 친밀한 관심과 보호 아래 둔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평강, 곧 샤롬입니다.
샤롬은 단순한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존재적인 안식과 조화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축복은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중보 기도에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헌신한 백성 위에 하나님의 이름이 머물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름이 보호와 평안과 영광을 보장할 것이다라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서원을 마치며 머리를 깎은 이유도 자신의 헌신이 결코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헌신을 통해 교회는 세워졌고, 이방인들은 복음을 들었으며, 하나님의 축복은 교회 공동체 위에 흘러갔습니다.
오늘 우리의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삶을 들이는 헌신은 나 한 사람의 헌신으로 끝나지 않고,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드림의 자리에서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리고 헌신한 자의 삶에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밝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헌신을 기억하시고, 그 헌신 위에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어 주옵소서.
우리의 드림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를 살리고 세우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헌신하는 자의 길 끝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평강으로 가득한 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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