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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헌신한 자의 구별된 삶(민수기 6:1~12)(20250328)

2025.03.28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하나님께 헌신한 자의 구별된 삶

 



안녕하세요. 

성민 교회를 섬기는 이해영 목사입니다.

사사기에는 특별한 인물 나실인 삼손이 등장합니다.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 구별되어서 포도주를 멀리하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며, 철저히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삼소는 그 구별됨의 의미를 가볍게 여겼고, 결국 자신의 힘과 운명마저 잃어버린 비극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나실인의 삶이 단순한 금욕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거룩한 헌신임을 보여줍니다.

민수기 6장에서 기록된 나실인 서원은 자신의 삶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의 삶의 원칙과 본질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자는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보이지 않는 거룩함을 쫓아 걷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그 구별된 삶의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늘 본문은 민수기 6장 1절에서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자의 구별된 삶

 

 

 

민수기 6장 1절에서 12절 말씀입니다.

더보기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7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8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9 누가 갑자기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면 그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일곱째 날에 밀 것이며
10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 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11 제사장은 그 하나를 속죄제물로, 하나를 번제물로 드려서 그의 시체로 말미암아 얻은 죄를 속하고 또 그는 그 날에 그의 머리를 성결하게 할 것이며
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드릴지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니라

 

 


민수기 6장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나실인의 서원을 설명하며 시작합니다. 2절을 보시지요. 

2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나실인이라고 하는 이 말은 나지르에서 왔는데 이는 구별하다 성별 하다는 그런 의미를 갖습니다.

나시리는 단순히 금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바쳐 거룩하게 구별된 존재가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한 여기서 선언을 하고라고 하는 이 단어는 네데르라고 하는 말인데 자발적이고 기쁨으로 드리는 헌신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나실인의 삶은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사모함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결단입니다.

그래서 3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에 따르면 나실인는 포도주나 독주를 멀리하고, 머리를 자르지 않으며, 시체를 가까이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생활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구별하는 세 가지 표증이었습니다.

특히 포도주를 멀리 하는 것은 향락적 삶을 거부하는 상징이요,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세상과 구별된 존재라는 상징이요, 

또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로서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맡긴다라는 고백이 담긴 것입니다.

이렇게 구별된 삶의 원칙은 신약 성경에서도 반복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이지요.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나실인의 서원은 단순한 행위의 규제가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려는 영적 예배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놀라운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세상과 구별될수록 하나님께는 더 가까워진다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을수록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더 깊은 자유와 충만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선택할 때, 보이는 세상의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는 역설이 바로 나실인의 삶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표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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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부터는 나실인이 부정한 것과 접촉하게 되어 서원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 그 서원을 새롭게 하는 교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부정한 시체와 접촉하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정결함을 잃었을 때, 나실인은 머리를 밀고 속죄제를 드리며 새로운 서원의 기간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9절의 말씀을 보시죠. 

9 누가 갑자기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면 그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일곱째 날에 밀 것이며

 

여기서 더럽히면 이라고 하는 이 말은 앞에서 등장했던 타메라는 말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재를 막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단지 외부적인 더러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가 일시적으로 단절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럽혀진 이 사람은 이날로부터 7일째 되는 날에 머리를 밀면서 다시 몸을 정결케 할 수 있었습니다.

12절인데요. 

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드릴지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니라

 

특히 12절에서 새로 정하고 라고 하는 이 말은 다시 구별하다 다시 성별 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실수하고 넘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을 영원히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복의 길을 열어두시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이 회복의 원리는 요한일서 1장 9절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렇습니다.

나시린의 삶은 완벽한 순결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거룩을 향한 끊임없는 회복과 순종의 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는 나실인으로 택함을 받았지만 서원의 가치를 가볍게 여겼고,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큰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삼손의 실패는 끝이 아니었고, 그의 마지막 기도는 새로운 헌신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넘어지고 실패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부르시고 새로운 헌신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삼손처럼 다시 구별된 자리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내가 부지중에 죄를 지었다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나요?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거룩한 나실인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유혹을 멀리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선택하며, 구별된 삶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으켜 주시고, 새로운 헌신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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