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8 | 생명의 삶 | 이해영 목사
안녕하세요.
성민교회를 섬기는 이해영 목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서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이 말씀은 신앙이란 눈에 보이는 확증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의 존재와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여정임을 말해줍니다.
믿음은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을 때 더 깊어지며,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진정한 신뢰가 형성됩니다.
오늘 시편 77편은 깊은 절망과 하나님의 부재의 침묵 속에서 흔들리는 한 성도 아삽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그 흔들림의 중심에서 시인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어두운 밤에 길을 잃은 듯 느껴질 때 하나님의 얼굴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그 귀한 마음을 나눠줍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77편 1절에서 9절의 말씀입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에 하나님을 찾는 성도
시편 77편 1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2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3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4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5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6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9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
시인은 고통의 현실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입니다.
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여기서 부르짖다는 이 말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는 절박한 외침으로 단순한 기도가 아닌 전 존재를 쏟아내는 심령의 울부짖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시인은 환란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밤에도 그 손을 거두지 않았고 쉬지 않습니다.
그런데 3절에서 그 부르짖음은 이내 낙심으로 이어집니다.
3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여기서 분명한 아이러니가 나타나는데요.
하나님을 기억하면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과 근심이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침묵이 너무 길고 현실의 어둠이 너무 깊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간절히 믿기에 아파하고 흔들리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는 신앙은 언제나 평안한 확신이 아니라
더 깊은 고통과 씨름하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여전히 믿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기도는 끝나지 않은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4절부터 시인은 점점 더 깊은 밤으로 들어갑니다.
4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침묵하신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시인은 말조차 잃은 자리에 놓이게 됩니다.
말할 수 없다라는 이 표현은 단지 언어의 상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기도조차 흐려진 영혼의 깊은 침묵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이어서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라고 그렇게 5절과 6절에 고백합니다.
5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6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과거의 구원과 찬양과 기도의 기억들이 현재의 절망 속에서 다시 떠오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오히려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7절과 8절입니다.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이런 부정적인 질문들은 단순한 불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의 질문,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려 애쓰는 자의 눈물 어린 외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9절에서 그가 베푸실 극유를 그치셨는가라고 하는 이 물음은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깊은 침묵 앞에서 터져 나오는 믿음의 탄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9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이 모든 고백은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외침,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Eli, Eli, lama sabachthani) 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절규와 같은 외침 속에는 절망이 아니라 가장 깊은 신뢰 속에서 터져 나오는 고독한 사랑의 절규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버림이 아니라 믿음이 더 깊어지는 은혜의 침묵입니다.
말이 끊겨진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도가 막힌 자리에서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노라 라는 그 걸음을 다시 내디딜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어두운 밤의 깊은 침묵 속에서도 주님을 찾는 심령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불안 속에 흔들릴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부르짖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그 부르지짐 속에서 변함없는 주님의 자비를 다시 찾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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