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8 | 생명의 삶 | 이해영목사
안녕하세요.
성민교회를 섬기는 이해영 목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 1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바울은 할 일을 단지 육체의 표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몸을 벗어버리는 영적 표지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은 외적인 율법으로 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구별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전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싸우기 전에 신앙의 정체성을 먼저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에게 할례를 베푸심으로 그들을 다시 언약의 백성으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단지 의식을 행한 사건이 아니라, 잃어버린 정체성을 되찾는 영적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승리의 칼이 아니라 언약의 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장면, 곧 할례와 유월절과 그리고 신을 벗는 거룩함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시는 언약 백성의 본질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여호수아 5장 2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언약 백성의 표지
여호수아 5장 2절에서 15절 말씀입니다.
|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직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뜻밖의 명령을 주십니다. 2절 말씀에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전쟁을 앞둔 백성에게 내려진 이 첫 명령은 무장이 아니라 할례였습니다.
이 명령은 전략적으로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도 아주 위험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준비시키고자 하신 것은 칼을 드는 용기와 무장보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그런 신앙의 표지였던 것입니다.
4절과 5절 말씀 속에서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들이 다 죽었고, 그 뒤에 태어난 자들은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그렇게 밝혀왔지요.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 정체성의 표지를 갖지 못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들에게 다시 내 백성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시기 위해서 할례를 통해 이루어진 언약의 회복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할례는 단지 육체의 상처가 아닙니다.
애굽에서 겪은 노예의 수치, 광야에서 보였던 불순종의 상처, 그 모든 과거를 굴러가게 하신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9절의 말씀입니다.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길갈은 단지 지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치를 거두신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신약의 세례와 깊이 연결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세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옛사람을 벗고 세례를 통해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그렇게 부르십니다.
너는 누구의 백성인가?
그리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수치를 굴러가게 한 하나님이다.

할례를 통해 언약 백성으로 회복된 이스라엘은 이제 그 회복의 믿음을 예배로 드러냅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광야에서 한 세대가 지나도록 멈춰졌던 유월절이 이제 약속의 땅 여리고 평지에서 다시 회복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의 기억을 되살리는 예식이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대에 새기는 언약의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 유월절 다음 날, 하나님은 또 하나의 전환점을 허락하십니다. 12절입니다.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하늘에서 내려오던 '만나'가 멈추고 이제 땅에서 자란 곡식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소중한 본문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기적의 중단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은혜가 시작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수고 속에 은혜를 머물게 하시는 그런 분이심을 알려줍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주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땅의 소산을 통해 그분의 신실한 공급자 되심을 계속 증언하고 계신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때,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여호수아를 거룩함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15절의 말씀입니다.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의 군대 장관은 여호수아에게 전쟁의 승리를 위한 전략과 지시가 아닌 내 발에 신을 벗으라 라는 거룩을 명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 음성 앞에 경외함으로 신을 벗고 엎드립니다.
이 장면은 마치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부르심을 받던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광야에서의 부르심이 출발을 위한 거룩이었다면, 열일곱 형제의 부르심은 정복을 위한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전쟁보다 예배를, 성취보다 경외함을 먼저 앞세우십니다.
할례와 유월절과 신을 벗는 순종, 이 세 가지 정신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신앙의 표지입니다.
회복을 위한 순종으로, 기억을 지키는 예배로, 경외함으로 엎드리는 거룩함으로 그 위에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세우십니다.
다시 한 번 사도 바울의 증언을 생각해 봅니다.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오.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을 벗고 세 사람을 입은 언약 백성의 삶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광야의 세월 속에 우리의 정체성이 희미해질 때에도 우리를 언약으로 다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시고 잃어버린 표지를 회복하게 하시며 기억의 예배와 경외함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이제는 하늘의 기적이 멈추어도 주님의 신실하심은 멈추지 않음을 믿습니다.
땅의 소산을 먹는 삶 속에서도 매일의 공급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여호수아가 신을 벗고 주 앞에 엎드렸던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신 임재 앞에 자신을 낮추며 엎드립니다.
거룩하신 성령님
우리의 마음과 삶에 그리스도의 할례를 베풀어 주시고, 새 언약의 백성으로 날마다 다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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